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상징, 개선문

by MASTERPIECE♪ 2021. 8. 29.

개선문 (Triumphal Arch)

파리 시내 북서부의 샤를 드골 광장의 중앙에는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상징으로 불리우는 또 다른 대표적 명소인 개선문이 있습니다.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인 개선문이 있는 광장은 이전에는 에투알(Etoilé, 별) 이라고 불렸으며 이는 방사형으로 뻗은 12개의 도로가 마치 별과 같은 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1970년 프랑스를 구한 장군이자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 골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개칭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여전히 에투알(Etoilé, 별) 광장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개선문의 특징 및 건축 이유

일반적으로는 개인이나 국민이 이룩한 공로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세운 대문 모양의 건축물을 가리키는데 기원은 기념군상의 대좌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구조물의 주 형태를 이룬 아치가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의 도시문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선식장으로 향해 가는 길에 꾸며진 장식에서 점차 항구적인 독립 건축물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주로 이런 기념물은 고대 로마 시대에 많이 세워졌는데 아치형의 통로인 공랑에 원주 등을 배치하여 조각으로 장식한 본격적인 형식은 제정로마의 초기 시기부터 시작 되었다고 추정됩니다. 기본적인 형식을 큰 아치 하나로 된 단공식과 그 좌우에 작은 아치를 표현한 삼공식등이 있으며 단공식 양식의 예로는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삼공식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예로 들 수 있으며 나아가 공랑을 십자형으로 교차하여 4면에 아치를 설치한 형식도 존재합니다.

 

특히 근대 국가주의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전례들을 모방하여 유럽 곳곳에 개선문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포함하여 카르셀 개선문, 도리스식의 원주를 배열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선문의 역사성과 상징성

개선문의 기원은 헬레니즘 시대의 시문이나 프로필라이아에 있다고도 하지만 결국 로마의 사적을 기념한다는 역사성과 더불어 도시공간의 기념비적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규모나 자세한 장식 등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로마 제국 도처에 건립되었으며 다만, 기념하려는 공적의 대부분이 전승에 있었기 때문에 개선식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어도 개선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이런 유형의 문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공화정치시대의 개선문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 남아있는 예로는 대형 아치 단일형(티투스 황제 개선문)과 아치 양측에 작은 아치를 덧붙인 (셉티미우 세베루스 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테트라필론, 트리폴리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개선문 등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는 고대를 본 떠 개선문을 가설 건축물로 세우는 경우도 있었으며 신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선문의 제작시기는 1836년 이고 장 프랑수아 테레즈 샬그랭이 건축하였습니다. 높이 51m, 너비 45m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1806년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승리한 후 프랑스 군대의 모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전 세계 국가의 숭전 기념비 열풍이 일어났으며 마름돌을 이용한 디자인은 볼트식 통로의 단순한 아치 형태로 꼭대기에 다락이 있고 네 개의 기둥에 새겨진 우의적 부조를 비롯한 다양한 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선문에는 장-피에를 코르토의 <나폴레옹의 승리, 1810>가 묘사되어있고 이는 월계관을 쓰고 토가를 입은 황제 나폴레옹이 트럼펫이 울리는 가운데 한 도시의 항복을 이끌어내는 장면입니다. 또한 말을 탄 인물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벌거벗은 명사, 그를 보호하고 있는 미래의 영혼을 표현한 <저항>, 로마 신화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의 보호를 받는 전사가 농부들에게 둘러싸여 칼을 칼집에 꽂는 장면을 묘사한 <평화> 두 점의 부조는 앙투안에텍스의 작품입니다. 특히 프랑수아 루드의 <1892년 자원병들의 출정>은 전쟁의 여신 벨로나가 이끄는 알몸의 애국자들이 프랑스의 적들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