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하는 인류의 상징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와 공학 토목 기술자인 구스타브 에펠이 협업하여 만든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6년 프랑스가 선물로 기증한 것입니다. 뉴욕의 힘 입구에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수백만명의 이민자들을 환영해 온 조각상이며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뉴욕 앞바다에 자그마한 2개의 섬 중 리버티 섬에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동상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인류에 던지는 상징적 메세지가 숨어있는데 가난과 독재, 전쟁을 뒤로하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너 기회의 땅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맞아주는 자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 기념일이 새겨진 책을 들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가운데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의 제작 및 운반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에두아르 드 라불레는 자유와 희망,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제작을 제안하였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를 가지고 추진 위원회를 설립하여 동상을 만들 작가로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를 선정하였는데 1871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이 때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이미지를 확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74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렌트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 일을 계기로 자유의 여신상은 양국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 맨해튼 바로 앞에 있는 리버티 섬에 설치한 후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 7월 4일 공개 하기로 하였으며 동상은 프랑스에서 만들고 동상을 올려놓을 받침은 미국에서 만들었습니다. 또한 나라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이 아닌 양국 국민들의 성금으로 건설하기로 했는데 프랑스와 미국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모금액이 터무니 없이 적었기 때문에 1881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높이 46m, 총 무게 225t에 달하는 거대한 이 동상은 완성하는일도 무척 어려웠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운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거대 동상을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300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누고 기차를 이용해 프랑스의 항구도시 루앙으로 운반한 후 프랑스 군함으로 리버티 섬까지 운반하였습니다. 섬으로 옮겨온 후 원래 상태대로 조립하기 위해 별 모양의 받침대 위에 나누어 옮겨온 여신상을 조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도 있지만 조각 1개가 수백 킬로그램이나 되는 동상을 정확하게 조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의 의미와 특징
1886년 10월 28일 드디어 제막식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 였으나 최종적으로 '자유의 여신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의 빛 또는 계몽의 빛을 상징하며 왼손에 들고 있는 사각형 책은 앞면에 1776년 7월 4일이라고 새겨져 있어 미국 독립 선언서를 상징한 것입니다. 또한 왕관에 달린 7개의 가시는 북극해, 남극해, 남대서양, 북대서양, 북태평양, 남태평양, 인도양의 7개의 바다와 전 세계 대륙을 의미합니다. 몬을 감싸고 있는 긴 옷은 민주주의를 실행했던 로마 공화국을 상징하는 것이며 발로 밟고있는 쇠사슬은 노예제도 폐지를 의미합니다.
구리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며 바닷 바람에 빠르게 산화되어 밝은 녹색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 안에는 유일하게 동상 안에 있는 박물관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동상이 아니라 받침대 안에 박물관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여 재료와 모형, 도구 등의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꼭대기인 왕관 부분에는 전망대가 설치 되어 있어서 뉴욕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벽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를 바라는 그대여, 가난에 찌들어 지친 이여, 나에게 오라.
고난에 처해 의지 할 곳 없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황금의 문가에서 횃불을 들리라.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도심속의 또 다른 도시, 자금성 (2) | 2021.09.28 |
---|---|
불로장생을 꿈꾸던 황제의 무덤, 진시황릉 (0) | 2021.09.27 |
이슬람 건축 양식의 극치, 알함브라 궁전 (0) | 2021.09.23 |
인류의 잔인한 흔적,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0) | 2021.09.22 |
태국 왕조의 화려한 기록, 아유타야 (0) | 2021.09.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