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와 에이브베리의 특징
스톤헨지와 에이브베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석군 중 하나이며 근처의 신석기 유적지는 선사시대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월트셔에 위치하고 있고 두 곳의 유적에는 환상열석이 있어 환상의 패턴을 두고 천문학적 의미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특히 스톤헨지에는 애비뉴, 커서스, 더링턴 월, 우드헨지 등과 영구에서 가장 많은 흙무덤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에이브베리어에는 윈드밀 언덕, 웨스트 케넷 롱 배로, 생크추어리, 실베리 힐, 웨스트 케넷, 백햄프턴 애비뉴, 웨스트 케넷 팰리세이드 인클로저와 중요 고분들이 있습니다.
스톤헨지는 월트셔의 사르센 석과 펨브로크의 블루스톤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그 규모 및 정교한 평면도, 세련된 건축 디자인, 돌들의 모양이 독특하여 세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선사시대 거석 유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대규모 헨지가 있는 에이브베리와 유럽에서 가장 큰 선사시대 흙무덤인 실베리 힐은 흙과 거석 건축의 걸작이라고 불릴만큼 탁월한 공학 기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톤헨지와 에이브베리의 역사
기원전 3,100년~기원전 1,100년에 건설되었고 몇 단계를 거쳐 건축되었습니다. 세번째 단계에서 선돌위에 커다란 상인방을 놓아 수직 블록에 접한듯한 엔타블러처 형태로 만들었으며 건축에는 두가지 석재가 사용 되었습니다. 불규칙한 사르세넉은 솔즈베리 평야에서 가져왔고 블루스톤은 스톤헨지 유적에 약 200km 떨어진 웨일스의 펨브로크 카운테이서 가져왔습니다.
구부러진 애비뉴는 바깥쪽 원에서부터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인공적으로 깎은 돌들이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구조에 따라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당시, 중대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적의 용도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구조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종교 의식 장소 또는 천체 관측용으로 사용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태양을 숭배하는 성역이었다는 이론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일부 선사시대 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유 시인과 드루이드들의 민간 전승 행렬인 연례 하지 의식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에이브베리는 스톤헨지처럼 잘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큰 환상열석이 있는 유적이며 바깥쪽 원은 약 100개의 선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파편들이 이곳에 3000년 초기 이전에 180개의 선돌이 놓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스톤헨지의 용도는?
스톤헨지의 뜻은 '공중에 걸쳐있는 돌' 이라는 의미로 크게 보면 바깥쪽은 동심원, 안쪽은 말발굽 형태의 석주들이 이중으로 늘어져있는 형태이고 바깥쪽 석주와 석주 사이에는 문미석이라고 불리는 가로돌을 올렸습니다. 또한 외부 도랑의 지름이 약 100m이고 중심에는 제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놓여져 있습니다.
원의 북동쪽 방향에는 힐스톤이라는 돌이 놓여있는데 하지날 태양이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떠오른다고 하며 이를 통해 당시의 건축학자들이 상당한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스톤헨지의 사용 용도가 천체관측용이라는 추측을 낳게 했습니다. 유적지 외곽의 도랑이 건설된 건 기원전 3,100년 경이며 현재 형태로 배열이 완성된 것은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측됩니다. 더불어 현재의 구조를 갖추기 까지 최소 세 번 이상 재배치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톤헨지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1,130년에 헨리 힌팅턴 목사가 쓴 '영국인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며 저자는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유적"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스톤헨지가 이미 12세기에도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웨일즈 몬마스 지방의 주교 제프리 몬머스는 1,136년 자신의 저서 '브리튼 왕들의 역사'에서 스톤헨지가 아더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술사 멀린이 만든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7세기 국왕 제임스 1세는 스톤헨지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존스에게 내렸는데 존스는 스톤헨지의 전체 크기를 측정하고 배치도면을 그리며 건축적인 측면에서 유적의 정체를 추적한 후 로마인들의 신전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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